우리는 자신에게 사랑을 줄 대상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을 무한하게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일지 이승헌의 붓그림 명상 中
항상 가족을 희생하면서 살아왔지만 좋은 소리도 못듣고 살아온
불쌍한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피해자','희생자'라는 타이틀은 스스로가 만든
굴레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장은성씨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어린시절의 기억
IMF때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회사가 부도가 났다.
그리고 연이어서
아버지는 추락 사고를 겪었고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낳다 돌아가실 뻔 했다.
나는 그 시절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에 매우 어렸다.
하지만 나는 2남 1년 장녀이기에
동생들을 돌보고 부모님을 도와야 했다.
친구들은 다가는 수학여행도 못 갔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차마 부모님께 얘기하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우울한 아이였다.
사람은 저마다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희생을 하기 위해 태어났다 싶었다.
우울했고 불면증에도 시달렸다.
관심과 변화
23살 되던 해 자주 갔던 병원 간호사 선생님이
제 우울함이 안쓰러웠는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단월드 명상을 권유했다.
간호사 선생님과 함께 찾아간 단월드 센터에서는
한없이 맑은 미소의 원장님이 맞이해 주셨습니다.
단월드 명상을 시작하고
항상 겨우 잠들던 내가
누우면 바로 잠드는 기적이 일어났다.
다시 숨 가픈 삶으로
그러다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족을 챙겨야하는 장녀였기에
퇴근 후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리고 단월드 센터를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을 가게 되었고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보내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다시 마음이 신호를 보내다
결혼을 하고 양산으로 오게 되었다.
직장에서 3교대 근무에 매일 새벽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항상 잠이 부족했고 피곤했다.
타지에서의 결혼생활에 시어머니 병수발까지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우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8개월쯤 지났을 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병원을 갔는데 천식이라는 병이 왔다고 했다.
평상시 잘 아프지도 않고
감기도 안 걸렸는데 억울하고 분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점점 증상은 심해져 갔고 약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벼랑 끝에서 떠오른 이름
그러길 몇 개월 후 아픈 시어머님의 병수발이 끝나던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적인 말을 듣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은 낙타가 쓰러지는 마지막 짐처럼 나를 무너뜨렸다.
그날 나는 집 베란다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냥 죽을까. 내 삶은 왜 이러지.
나도 행복 하고 싶은데...,
난 왜 늘 피해자일까.
난 왜 늘 희생을 하고도 좋은 말도 듣지 못하나.
그냥 생을 끝내버릴까.’
베란다 난간을 잡고 바깥을 보는데,
갑자기 번뜩 예전에 다녔던 단월드가 떠올랐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검색을 하니 새로 다니던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단월드가 있었습니다.
단월드는 그렇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제야 다시 찾은 게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기회가 되어서
단월드 명상코칭 프로그램인
파워브레인메소드(PBM)에 참가했다.
"내 가족은 나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나는 평생 희생하고 살았다.
나는 피해자이다.”
내가 그린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pbm명상 시간동안
내가 가족을 얼마나 소중해 하고 사랑하는지를 알았다.
사랑했기에 집착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왔다.
희생, 피해자...
내가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다
피해자, 희생자의 삶이라 치부하기엔
나는 너무 소중한 존재였다.
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가해자로 만들기에는
내 가족, 동생들은 너무 소중했다.
알게 되니 벗어날 수 있었다.
제일 소중했던 동생들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항상 피해자, 희생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 존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으로 내게 힘을 주면서 살아갈 것이다.